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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평창동 그린하우스 승욱이 돌잔치 엄마의 알콩달콩 일상

큰이모네 둘째 승욱이의 돌잔치입니다.

장소는 평창동 그린하우스입니다. 도착해보니 그 유명한 평창동 한 중간인듯합니다. 동네가 조용해서 맘에 드네요. 하지만 약간은 언덕길인 것이 마음에 걸리네요. 그린하우스는 3층 건물인데, 깔끔한 분위기입니다. 돌잔치나 상견례 등에 많이 사용될듯한 그런 건물이네요.

모두들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며 승욱이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특히 시작전부터 정민이와 정아는 피아노치면서 생일축하합니다. 노래를 그렇게 연습했건만 정아가 그렇게 힘차게 노래했었는데 막상 시작하니 목소리가 좀 작아서 본인 마음에도 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음식도 맘에 들고 조용하 동네 분위기도 맘에 들고 돌잔치 장소로서는 딱이네요. 잔이모도 아기 낳으면 여기서 돌잔치 한다고 합니다.

승욱이는 마우스 잡았습니다...^^


덧글

  • 子宮母腸 2010/12/26 08:41 # 삭제 답글

    얘야 이리 오너라 이것좀 이고가자. 한 두어말쯤 되어 보이는 쌀자루를 들어 머리에 얹어주곤 어머님은 앞서 걸음을 옮기셨다. 모시적삼을 시원하게 차려 입으시고 머리는 손수건으로 시원스레 묶으셨다 장날도 아닌 평일에 산 모퉁이를 돌아 걷어가는길은 그 누구도 없고 가끔 꾀꼬리가 우는소리가 들려온다. 볕이고른 산모퉁이 에서 여기서 좀 쉬였다 가자 어머니 아무표정도 없이 자루를 내려 놓으셨다. 한숨도 아니쉬시고 그 특유의 껄껄 웃음도 없으셨다. 아마도 한달내내 아버지께서 발걸음을 아니 하신것 때문인것 같다. 조그만 돌맹이 하나 주워 땅위를 긁적이다가 먼 들녘 한번 쳐다보곤 눈치한번을 보다가 또 자루를 들어 머리에 이고 장으로 간다. 긴긴 논틀을 걷는동안도 어머니는 표정하나 없으시다. 주재소앞을 돌아 철물점 앞에 오자 어머니는 쌀자루를 내려 놓으셨다. 철물점으로 들어가시더니 싸장사 아줌니가 따라 나오셨다 힘도좋게 한손으로 자루를 가져가시고 어머닌 "예서 잠간 기다리거라" 하시곤 어디론가 가셔서 한참있다가 오셨다. 아무말씀이 없으시나 아무래도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신것 같다. " 가자꾸나" 한시간 내내 걸어 오면서 우리 둘은 단 한마디도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자 청마루에 풀석 앉아 메꾸리를 글어당겨 참외 하나를 깍아 주며 " 이거 먹어라" "예" 참외를 다 먹도록 둘은 아무말도 없었다.
  • 子宮母腸 2010/12/26 08:50 # 삭제 답글

    아니 어제저녁에 누가 담장을 넘었어 글쎄 앞치마를 깔아놓고 쌀을 부어보니 예닐곱말은 되겠더라고 아니 어쩜 쌀한톨 안 흘리고 귀신이 곡하게 퍼냈지 뭐야. 내 그래서 은행나무골 과 참나무골을 다녀왔지 낼은 도둑골과 그지골을 다녀 오려고해. 할머니는 놀란가슴을 쓸어내리시며 도둑을 찿으려고 염탐을 하셨다. 그러나 그러게 말이예요. 이 대답 밖에는 무슨말도 할수 없었다. 몇일전 낮에 방물장수와 피륙장수가 다녀갔지만 그런 이야기도 할수가 없었다. 말을 할줄도 몰랐지만 해서도 안된다고 묵시적 가정교육을 배었기 때문이다. 침묵은 금이다. 라고.
  • 子宮母腸 2010/12/26 09:03 # 삭제 답글

    그 즈음의 딸들은 공출되지 않기 위해서 왼만한 남자만 있다면 일찌감치 민며느리로 보내여졌다. 열두세살 정도의 처녀들은 일찌기 보내여져서 살림을 배우고 농사일을 거드는것이 공출에 나가는것보다 이롭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풍년이 들은해이면 용케도 알아 주재소에서 공출로 곡식과 아들딸을 바치라고 조사를 나왔다. 그래야 애국자란 소리를 듣고 살아갈수가 있었다. 씨를 얻지 못하면 유명한 절을 찿아 백일기도를 드리기도 하여 집안의 대를 이어야 할도리를 다하는 것이였다.
    유명한 절은 도를 가르치고 집안을 일으키며 나라를 통찰하는 기관의 역활을 하고 있었다 무력을 키우는 은밀한 곳이였던 것이였다. 불국사나 소림사 가 이당시에도 유명하다고 인도에까지 소문이 나고 경성일보에 대서특필 되였던 시절이였다.
  • 子宮母腸 2010/12/26 09:15 # 삭제 답글

    조선은 죽은지 오래였다. 오직 일본과 청이 맞서 싸울뿐이였다. 남정네들은 칼을들어 일본에 붙기도 하고 만주로 이발을 빼고 피를 흘리며 도짜를 놓기도 했다. 이당시 독립을 위해 몰려 다니던 사람중에 공을 세운자는 눈씻고 찿아도 한둘에 불과 하였다. 일에 붙은힘없는 자들은 그럭저럭 철도며 저수보며 학교며 큼직한 사업을 벌여 돈을 벌기 시작 하였다 이때부터 집사직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와세다 대학은 부잣집 아들들이 공부하여 대 일본제국에 이바지 하는것이 목표였다 적어도 표본상으론 그랬다. 그 승승장구하던 대일본제국이 하와이를 먹으려다가 유엔이라는 그룹에게 두손두발 다 들었다 일본천황이 맨발로 뛰여나와 항복을 하였던 것이였다. 물폭탄과 불세례를 받았다는 것이다 일본은 이에 회개하고 성령을 받아야 한다 적어도 역사는 그렇게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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